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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태호의 당구칼럼[9] - 당구 이미지개선에 총력하자!
작성자 조아당구재료 (ip:)
  • 작성일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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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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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의 당구칼럼[1] - 당구 이미지개선에 총력하자!

 

 

 

복사 http://blog.naver.com/goldcue/4001754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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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가 가장 많이 보급되어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1565년 스페인 사람에 의해 플로리다에 처음으로 당구가 전해졌으며 남북전쟁(1861~1865)직전에 선풍적인 유행을 하여 1859년 4월에는 처음으로 디트로이트에서 15,000달러의 상금을 놓고 마이클 펠런과 죤 세레이트가 승부를 가리는 4구 내셔날(national)선수권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존 워싱턴(1732~1799), 존킨스 아담스(1767~1848) 등은 백악관에 있는 당구장에서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 링컨(1089~1865)은 당구에 심취되어 게임을 매일 즐겼을 정도로 광이었으며 그 무렵 미국은 당구가 크게 발전하였다.

1947년 전미(全美)457개 대학에서 당구테이블을 설치하여 학원스포츠로 시발이 되었으며 가정에도 가족스포츠로 발전하여 1960년경에는 약 400만 가정에 당구테이블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당구는 미국에서도 건전 스포츠로 활황을 누렸으나 1960년대 다종국의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당구가 변질되기 시작하였으며 영화산업이 발전하면서 당구를 폭력적 선정성의 매개로 활용되어 우리나라 당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왔다.

어느 누구든 미국영화 한두 편은 다 보았을 것이다. 스크린에 비쳐진 당구장의 이미지는 자욱한 담배연기, 당구대에 걸터앉아 술 마시는 장면, 선정적인 여체장면, 폭력장면 등 간접적인 교육(?)아닌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대국인 미국의 간접홍보(?)가 우리 동호인들의 당구관을 왜곡시킨 것이다.

당구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한국 등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들 모두 당구가 황실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사실이다.

역사와 문화가 깊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당구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고 있으며 당구를 치는 플레이어는 그 나라 국민들에게 우상이기도 하다. 영국의 경우 왕실의 지원 아래 BBC 방송의 주관으로 년 간 40만 파운드(한화 약8억원)상당의 스누커 당구대회가 년 간 11차례나 있으며 테니스선수 다음으로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으며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의 여러 나라는 고액의 시상금이 걸린 클럽별 3쿠션 당구대회가 년 간 40여 차례 이상 개최된다고 한다.

분명 우리나라도 왕실에서 출발하였다. 반만년의 역사와 웅대한 문화를 가졌건만 당구의 가치관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내 자식이 당구장에 간다면 걱정스러워하는 부모가 있는가하면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당구를 즐기는 샐러리맨들도 없지는 않다. 당구를 잘 친다면 왠지 불량스러워 보이는 사회적인 분위기 등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20년 초반 남대문시장 입구에 일본인 당구장인 경성구락부가 5대의 당구대를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나 한국인은 입장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며 주로 총독부 관리들의 전용클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국인이 처음으로 당구장을 개업한 것은 1924년에 무궁헌 이라는 이름으로 2대의 당구대를 설치하여 영업을 함으로서 최초 한국인의 당구장이 만들어졌다. 그 이후 종로와 명동을 중심으로 광교당구장, 종로당구장, 중앙당구장, 테이라당구장 등 1대부터 5대까지의 당구장들이 신설되었다. 1940년대 초에는 서울에만 33개의 당구장이 있었으나 일반서민들은 당구장 출입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반면 주 고객은 일본인관리인 내지 최고의 엘리트 및 고급계층이 즐기는 특수종목으로 설정(?)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당구장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호황은 계속 되었다.

사회적인 저명인사(권력, 재력가)들이 임의단체인 헙회조직에 참여하는 등 초석의 공사가 시작되던 무렵 4, 19와 6, 25를 거치면서 사회적인 혼란기를 틈타 무위도식자, 깡패들이 당구장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당구를 즐기는 계층이 바뀌어 지기 시작하였고 미국영화에서 보았던 왜곡된 당구관이 접목되어 당구란 본질은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하였으며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담배를 물고 경기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며 남을 의식하지 않고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경기를 하고 있으며 다른 경기자와 접촉 시 인상을 쓰면서 위화감을 조성하는가 하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하는 천박함을 보이기도 한다. 결코 우리의 원래 문회가 아님에도 이러한 일들이 횡행하여 왔다.

일제강점기에 당구가 유입되어 오랜 세월 일본용어를 사용하다보니 일부의 청소년들은 당구의 발상지가 일본으로 혼동하고 있으며 정확치도 않은 일본용어를 앵무새처럼 재잘댄다. 30여 년간의 당구 암흑기에 속어와 비어가 난무하여 당구장에만 가면 인격을 팽개친다.

다행히 “1991 서울월드컵 당구대회”를 유치하면서 세계당구를 경험하여 당구의 개념과 질적 향상을 꾀하였으며 92~93 한국당구 최강전을 시작으로 27회의 공중파 방송을 통한 당구중계 역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으며 시청률 30% 이상을 상회하는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당구종목이 대한체육회 가맹됨으로써 스포츠로 확고한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아시안 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방콕대회에서 동메달,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 하는 등 한국당구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국민생활체육당구연합회가 지역별 및 전국대회를 정례화 함으로서 당구에 대한 국민들의 선입견은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을 계속 승화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며 어느 누가 주최하든 대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더불어 당구관계자는 당구홍보를 위한 고도의“언론플레이”를 펼쳐야하며 전 당구관계자는 건전한 당구문화를 이룰 수 있는 “파수꾼”이 되어야하며 경영자는 동호인들의 올바른 당구문화를 갖게끔 하는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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